고개 숙인 자 얼굴 든 자… 정의의 단면 [김용우의 미술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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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 5월 3일' 1814년, 캔버스에 유화, 268×347㎝,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 [그림 | 위키미디어] 세상엔 유독 영웅 이야기가 많이 떠돈다. 칭기즈 칸, 알렉산더 대왕, 나폴레옹은 대표적인 사례다. 모두 세상을 정복해 이름을 높이고, 부귀를 추구한 인물들이다. 하지만 전쟁이란 언제나 상대적이다.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다. 승자는 개선의 나팔을 불겠지만 패자는 굴욕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런 승패의 법칙은 예술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우리가 신년 음악회에서 즐겨듣는 '라데츠키 행진곡(요한 슈트라우스 1세 작곡)'은 이탈리아에선 들을 수 없다. 반면, 요제프 라데츠키 폰 라데츠의 조국대출가능한곳
인 오스트리아에선 음악회 앙코르곡 1순위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1848년 육군 원수인 라데츠키가 이탈리아 국민혁명을 무너뜨리는 군사작전을 지휘한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군대를 물리친 러시아의 승전 기념 음악인 '서곡(차이콥스키 작곡·1812년)'도 프랑스엔 쓰디쓴 기억을, 러시아엔 승리의 기쁨을 전하는 음악이다. 인천텔레마케터
그림에서도 전쟁을 소재로 다룬 작품이 많다. 스페인 화가 프란시스코 고야(1748~1828년)가 그린 '1808년 5월 3일'이란 작품을 살펴보자. 이는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했을 때를 다룬 작품이다. 프랑스 혁명으로 등장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1769~1821년)은 프랑스 공화국 제1통령으로 등장해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아파트전세자금대출조건
랐다. 봉건적 왕정을 무너뜨린 시민들은 나폴레옹을 옹립해 민주화를 꿈꿨지만, 정작 나폴레옹의 생각은 달랐다. 권력욕에 휩싸인 그는 다시 왕정을 세우고, 전쟁을 시작했다. 그래도 군인 출신인 그가 가장 잘하는 게 전쟁이었기 때문인지 초창기 나폴레옹은 프랑스를 넘어 유럽 전역에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베토벤이 교향곡 '영웅(Sinfoni대구 수협
a Eroica)'을 헌정할 생각으로 악보에 '보나파르트'란 글씨를 새긴 건 유명한 일화다. 자칫 베토벤의 세번째 교향곡은 '보나파르트'가 될 뻔했다. 시민의 인기를 등에 업은 나폴레옹은 1808년 여러 명목으로 스페인에 군대를 파견했다. 카를로스 4세를 퇴위시키고, 뒤를 이어 왕에 오른 페르난도 7세도 겁박해 쫓아냈다. 그후 스페인 왕카드발급조건
에 친형 조제프를 임명했다. 고야는 스페인이 이렇게 격변기를 겪고 있을 때 카를로스 4세의 궁정화가였다. 힘없는 왕가王家와 풍전등화 같은 나라의 미래와 함께한 화가 고야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고야는 역사의 흐름을 중심에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증언하기로 했다. 화가 이전에 한 사람의 지식인이자 시대의 리더로서 책임을 다하고바로바로론 부결
자 했던 거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 '1808년 5월 3일'은 무척 거칠게 그려졌다. 궁정화가다운 고전적인 기법으로 인물을 묘사하지 않고 빠르게 붓 처리한 그림은 인상주의 작품처럼 보인다. 그렇기에 드라마틱한 현장감이 더욱 강하게 다가온다. 프란시스코 고신용불량자 조회
야, '1808년 5월 2일' [그림 | 위키미디어] 그림의 발단은 작품명인 1808년 5월 3일의 하루 전날이다. 스페인 민병대는 5월 2일 인간 병기로 알려진 용병들과 프랑스 기병대를 습격했다. 프랑스 기병대는 다음날인 3일 무수한 시민을 보복 차원에서 학살했는데, '1808년 5월 3일'은 이대출금상환계산기
를 그린 작품이다. 진압하는 자와 저항하는 자를 잠시 들여다보자. 오른쪽은 무장한 프랑스 군인들이다. 그 앞엔 스페인 시민이 있다. 군인들은 정당하다는 듯 날카로운 총칼을 들이대고 있다. '명령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듯 아무 생각도, 따뜻한 피도 없는 기계처럼 보인다. 그림의 앞쪽엔 이미 처형된 주검들과 처형될 사람들의 공포가 화면을생애첫주택자금대출한도
가득 채운다. 고야의 그림은 그들을 신앙으로 승화하고 있다. 수도사 복장을 한 이들이 기도하고 있다. 가운데 흰옷 입은 인물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다. 그의 손엔 십자가의 성흔聖痕이 완연하다. 흰색은 죄 없는 사람의 깨끗한 제의가 돼 있고, 총칼 앞에 마주 선 선한 자의 비폭력은 최후의 승자를 말하고 있다. 체감식
언제나 정의를 부르짖는 가해자들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죄 없는 피해자는 얼굴을 하늘로 향한다. 피카소 작품 '게르니카의 울부짖는 어미'의 얼굴도 그렇다. 전쟁과 영웅, 그 속에 고통받는 사람들 모두 동시대를 잠시 살다 가는 사람이거늘, 권력과 탐욕이 그리도 소중할까. 김용우 미술평론가 | 더스쿠프[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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